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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연구원

금시초문

물건값도 제때 못 주는 기업은 사업에서 손 떼라

권의종 2024-08-27 조회수 35
물건값도 제때 못 주는 기업은 사업에서 손 떼라
  •  권의종
  •  승인 2024.08.27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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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종이 어음, 여전한 늑장 지급...기업들, 대금 지급 고의로 미루는 못된 버르장머리 뜯어고쳐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옛날얘기는 웃프다. 재미있으면서도 눈물이 난다. 2000년대 초반쯤까지의 일이다. 그 시절에도 중소기업은 이용만 당하는 봉, 말 그대로 호구였다. 물건을 납품해도 제때 돈을 받기 어려웠다. 달랑 어음 한 장을 받아 쥐는 때가 허다했다. 어음 할인을 위해 은행을 찾아가면 담보를 요구했다. 담보 여력이 없는 대다수 중소기업은 신용보증기금의 문을 두드려야 했다. 

신보의 문턱도 높았다. 이미 보증을 많이 썼거나 대출금을 연체하는 등 신용도가 취약한 기업은 문전박대를 당했다. 보증마저 거절되면 갈 곳은 단 한 곳. 사채시장뿐이었다. 천문학적 금리를 감수하며 어음을 현금으로 바꿔야 했다. 그래서 받아 쥐는 돈은 납품액보다 훨씬 줄어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마저도 감지덕지해야 했다. 

설날이나 추석 명절 때는 참으로 기막힌 일이 벌어지곤 했다. 종업원들은 고향 갈 기차표나 고속버스표를 미리 예매해 놓고도 돈 구하러 간 사장을 눈 빠지게 기다려야 했다. 늦게서야 돌아온 사장이 건네는 명절 상여금을 받아 들고 야간 입석 교통편으로 귀향길에 오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 시절에는 자금난에 허덕이는 납품업체를 등치는 기업들도 흔했다. 돈이 있으면서도 물건값으로 수 개월짜리 어음을 끊어주는 게 상례였다. 그게 자금관리의 노하우로 통할 정도였다. 경천동지할 일은 또 있었다. 현금 결제를 요구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자사 어음을 돌려받고 사채금리로 할인한 후 현금을 지급했다. 기업은 물건을 싸게 사서 돈을 벌고, 사장은 고리대금으로 치부하는 ‘꿩 먹고 알 먹는’ 장사를 했다. 납품업체를 두 번씩이나 우려먹었다.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티메프 사태 발단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그리고 한도 많았던 어음.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다. 2007년 전자어음법 제정이 계기가 됐다. 인터넷 뱅킹, 모바일 뱅킹 등 전자결제의 확산, 신용카드 사용 증가, 법적 규제와 정책 변화 등으로 어음 거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덕에 기업의 유동성 개선, 거래 안정성 증가, 경제 전반의 효율성 향상 등 긍정적 변화가 나타났다. 

또 어음 부도 위험이 줄어들면서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이 강화됐다. 이는 기업과 금융기관 간의 신뢰를 높이고, 금융 시스템 전반의 리스크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 납품업체를 등치는 기업들도 설 땅을 잃고 자취를 감추게 됐다.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물건값 지급을 고의로 미루는 갑질 관행은 여전히 건재하다. 오히려 지금이 예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대금 체불은 더 공공연해지고 노골화됐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결국, 대형 사고로 이어지고 말았다.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다. 소셜커머스 티몬을 서비스하는 티켓몬스터가 입점업체의 판매대금 지급을 지연한 게 발단이었다. 티몬이 입주업체로부터 납품을 받고도 수개월이 지나서야 대금을 지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티메프 미정산 사태로 총 4만8,000개 업체가 1조3,000억 원에 달하는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티몬 입점업체에 불리한 거래조건은 배송상품 판매계약서에서도 확인되는 바다. 티몬은 △차수 정산(1차, 2차, 3차) △주 정산 △월 정산 등을 통해 대금을 정산했다. 주 정산을 보면 최초 정산일은 최초 배송완료일+2주다. 매 정산일은 최초 배송완료일과 동일한 요일에 이뤄지고 최종 정산일은 판매 종료일+5주다.

'법보다 덕', 경영은 양심으로 해야

대책은 항시 뒷북. 매번 사또 행차 뒤 나팔 부는 식이다. 티메프도 미정산 사태가 불거진 지 두 달이 지나서야 정부가 '5,600억 원+α'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놨다. 그걸로도 부족했다 싶었던지, 첫 대책 발표 후 9일 만에 다시 16개 광역지자체 재원의 6천억 원 지원책을 공개했다. 이어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또 4,300억 원의 추가 지원을 결정, 총 1조 6천억 원의 유동성 지원안을 마련했다.

'제2 티메프' 사태를 막기 위한 제도개선안도 발표했다. 개선안에는 e커머스도 대형유통업체처럼 정산기한을 적용받도록 하고, 대금 일부를 별도 계좌에 관리토록 하는 법 개정 추진 계획이 담겼다. 모바일 상품권 발행업체의 지급 능력을 엄격히 규율하고, 선불충전금은 전액 별도 관리토록 해 업자가 파산해도 충전금 환급을 보장할 방침이다. 피해기업에 대해서는 대출만기를 최대 1년 연장할 계획이다. 세부 방안을 확정하는 대로 대규모유통업법·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그 정도로는 어림없어 보인다. 특히 상품권 발행업체가 선불충전금을 별도 예치하도록 한 조치는 한계가 있다. 새로 시행될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선불충전금 발행 잔액이 30억 원 이상이거나 연간 총발행액이 500억 원을 넘는 경우로만 감독 대상을 한정한다. 발행액이 적은 멤버십과 게임머니 등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스타벅스처럼 선불충전금이 직영점이나 가맹점에서만 사용되는 경우도 예외다.

크게 혼나야 할 대상은 기업이다. 대금 지급을 고의로 미루는 못된 버르장머리를 뜯어고쳐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정부 대책도 한낱 공염불로 그치고 만다. 미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선수금을 받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상조회사는 공정거래위원회 감독이라도 받지만, 상품권 발행업체는 정부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다. 게다가 대금 지급은 기업 간 문제다. 법으로 규제하거나 행정으로 강제하기 어렵다. 법보다 위대한 게 덕. 경영은 양심으로 해야 한다. 논어의 위정이덕(爲政以德)은 현대 기업이 꼭 새겨듣고 따라야 할 공자님 말씀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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