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금융시장연구원

금시초문

[제22대 국회 입법과제](48) 정책금융을 정치금융으로 악용하지 말라

권의종 2024-09-05 조회수 6
[제22대 국회 입법과제](48) 정책금융을 정치금융으로 악용하지 말라
  •  권의종
  •  승인 2024.09.05 09:50
  •  댓글 0


은행의 서민금융진흥원 출연비율 하한을 대출금의 0.03%에서 0.06%로 올리는 내용을 담은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 국회 통과...이번 서민금융계정 출연 확대는 형평성에 어긋나, 금융권 중 유독 은행만 출연 요율 인상...더 큰 문제는 출연비율 인상이 대출 가산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금융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된다는 점...결국 정부 사업을 은행 자금으로 운영하려는 시도가 문제...정치 개입 '무리수'가 금융 왜곡 '자충수'가 될 우려

지난 5월 30일 제22대 국회가 개원했다. 윤석열 정부의 임기 중후반기, 그리고 다음 정부의 임기 초반기를 함께 할 국회이다. 금융소비자뉴스는 올해 창간 12주년을 맞아서 사단법인 서울이코노미포럼과 공동으로 ‘제22대 국회 입법과제’라는 주제로 온라인포럼을 개최한다.<편집자 주>

■공동주최 : 금융소비자뉴스, (사)서울이코노미포럼

■후원 : (사)전국퇴직금융인협회, (사)금융소비자연맹, 금융소비자연구원, 서울자본시장연구원


[권의종 칼럼] 돈을 좀 벌면 손 벌리는 곳이 많다. 여기저기서 도움을 청해온다. 정치권의 요구는 단순한 부탁이 아닌 강압적 명령조다. "좋은 말할 때 내놓으라"는 식이다. 은행의 서민금융 출연을 늘리는 법률 개정이 그 예다. 은행의 올 상반기 이자수익이 29조 8,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시점에, 은행의 서민금융진흥원 출연비율 하한을 대출금의 0.03%에서 0.06%로 올리는 내용을 담은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출연금은 은행의 대출금 월중 평균잔액에 출연 요율을 곱해 산출된다. 출연기준 대출금에는 가계대출, 현금서비스, 장기카드대출 등이 포함된다. 이번 출연요율 인상으로 은행의 연간 출연액은 2023년 985억 원에서 1,970억 원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의 가계대출 증가세를 고려하면 향후 부담금이 더욱 커질 가능성도 있다.

이 출연금은 서민금융진흥원에 설치된 서민금융보완계정을 통해 근로자햇살론, 최저신용자 특례보증, 햇살론뱅크, 햇살론카드 등 다양한 서민금융 프로그램의 재원으로 사용된다. 이는 저신용자 신용보증을 통해 대출을 공급하고, 채무자가 상환하지 못하면 보증기관이 대신 갚는 구조다. 최근의 고금리와 고물가, 경기 악화로 저소득·저신용자들이 어려움을 겪으며, 지난해 서민금융진흥원의 대위변제액은 1조 원을 넘었다.

서민금융법 개정안을 발의한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은행의 이자수익이 계속 상승하는 가운데 서민들은 고금리로 고통받고 있다”며 “은행이 얻는 막대한 수익의 일부를 출연하는 것은 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며, 이는 서민금융정책의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 옥죄는 입법 횡포 기승

강 의원의 주장은 논리적 비약이 있다. 이번 출연요율 인상이 서민금융지원의 확대로 이어지기 어렵다. 연간 1,000억 원도 안 되는 출연금 증가분은 올해 기준으로 2,000억 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서민금융보완계정의 잔액 감소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적자를 메우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은행의 부담도 크다. 은행이 금리 인하와 이자 면제 등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한 대규모 민생금융 지원을 펼치는 상황에서, 다시 은행을 옥죄는 정치권의 조치는 불합리하다. 은행은 서민금융보완계정 외에도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지역 신용보증재단 등에도 출연하고 있다. 2024년에는 2,214억 원 규모의 민생금융 지원도 시행 중이다.

이번 서민금융계정 출연 확대는 형평성에 어긋난다. 금융권 중에서 유독 은행만 출연 요율을 인상한 것이다. 은행이 고금리 상황에서 ‘앉아서 벌어들인’ 수익을 정책금융기관과 2, 3금융권 신용공급 자금으로 재배분하는 리밸런싱(rebalancing)이라는 설명은 억지 논리다. 설득력이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출연비율 인상이 대출 가산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금융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된다는 점이다. 비용은 금융소비자가 대고, 생색은 정치권과 정부, 은행이 내는 격이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하석상대(下石上臺)에 불과하다.

서민금융보완계정에 대한 은행 출연은 시장경제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정부가 운영해야 할 정책금융을 민간 은행의 출연으로 강제하는 것은 지나친 정치 개입이다. 출자는 주주권 행사나 배당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출연은 대가 없는 순수 기부 행위다. 정책금융을 위해 민간 은행에 무상 출연을 강제하는 법률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 은행들도 이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관치금융보다 더 나쁜 정치금융

입법 제안의 배경에도 문제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은행의 직전 5년 평균 이자수익 대비 120%를 초과하는 순이자수익을 초과수익으로 규정하고, 이 초과수익의 40% 이내를 기여금으로 징수하자는 ‘횡재세’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중과세 등의 문제로 비판받자, 사실상 유사한 효과를 내는 은행 출연 확대로 방향을 튼 것이다.

은행을 괴롭히는 입법 횡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민주당은 대출 금리 산정 체계의 합리화를 골자로 한 은행법 일부 개정안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가산금리 산정 시 교육세와 법정 출연금 등 법적 비용을 제외하고, 가산금리 구성 항목에 대한 세부 내역 공개를 강화하는 것이다. 무리한 요구다. 은행의 영업 비밀인 금리 명세를 공개하라는 것은 기업에 생산단가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민주당은 디딤돌대출과 보금자리론 등 정책 모기지론에 대한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법안도 발의했다. 대출자들이 여유자금이 생길 때마다 대출금을 상환하려 하지만, 높은 중도상환수수료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 역시 선을 넘는 요구다. 고객이 대출을 조기에 상환하면 은행은 예상했던 수익을 확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대출관리비용도 회수하지 못하게 되는 점을 간과한 편파적 조치다.

결국, 정부 사업을 은행 자금으로 운영하려는 시도가 문제다. 은행들이 수익을 올렸다고 해서 법률로 출연을 강제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이 아니다. 정책사업은 정부 재원으로 운영돼야 한다. 정책금융을 정치금융으로 악용하면 금융시장이 왜곡되고 금융산업의 발전이 저해된다. 피해는 금융소비자에게 돌아간다. 관치금융보다 더 나쁜 게 정치금융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경영학 박사)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저작권자 © 금융소비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