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대한민국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 국정 운영의 동력을 잃고 있다. 탄핵 정국이 장기화되면서 정부 시스템의 허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에너지부(DOE)의 ‘민감국가(Sensitive Countries List)’ 지정 과정에서의 대응 실패다.
미국 정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은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다. 한국 정부도 이를 사전에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관계 부처들은 주무 부처를 명확히 하지 못한 채 책임을 떠넘기다 대응 시기를 놓쳤다.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여러 부처가 관여했다. 하지만, 조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한국이 해당 목록에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경제적·외교적 타격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정부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와 한계
이 문제를 단순한 외교적 실책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이는 정부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례이기도 하다. 국가안보실(NSC)은 탄핵 정국 속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국가정보원 역시 사전 감지와 대응에 실패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컨트롤타워가 부재하고, 부처 간 칸막이로 인해 신속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정부 시스템의 심각한 취약점을 보여준다.
탄핵 정국이 길어질수록 국정 운영의 공백이 커지고,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은 더욱 약화된다. 특히 이번 ‘민감국가’ 지정 문제는 대한민국의 외교적 협상력과 신뢰도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한국은 반도체, 인공지능(AI), 배터리, 원자력 등 전략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탄핵 국면이 장기화되면서 정부의 외교적 신뢰와 협상력이 저하되고 있으며, 이는 기업과 연구기관에도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민감국가’ 지정의 경제적 파장
‘민감국가’로 지정되면 한국 기업들은 미국과의 협력 과정에서 복잡한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연구소와 대학 간의 공동 연구도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한국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기술 협력과 투자 유치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신속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단순한 행정적 실책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이를 계기로 정부 시스템을 개혁하고 국제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먼저, 정부의 위기 대응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부처 간 협력을 강화하고, 국가안보실(NSC)과 국무조정실의 기능을 확대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외교·안보·경제 현안에 대한 부처 간 협력 시스템을 정비하고, 실시간 정보 공유와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위기 극복을 위한 긴급 전략
정치적 혼란도 조속히 수습해야 한다. 탄핵 국면이 길어질수록 국정 운영의 마비가 심해지므로, 정치권은 정쟁을 멈추고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 탄핵 절차와 별개로,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서는 초당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미국과의 신뢰 회복을 위해 여야가 공동으로 특사를 파견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외교적 대응도 시급하다. 사또 행차 뒤에 나팔 부는 격이나, 안덕근 산업부 장관의 방미를 계기로 정부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의 고위급 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또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기존 협정 체계를 활용해 ‘민감국가’ 지정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협상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기업과 연구기관을 위한 지원책도 강화해야 한다. 미국과의 기술 협력 약화에 대비해 국내 연구개발(R&D) 지원을 확대하고, 유럽·일본 등 대체 협력 파트너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아울러, 산업계와 긴밀히 협의해 ‘민감국가’ 지정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대책 마련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길
탄핵 정국이 이어질수록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외교적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위기를 정부 시스템 개혁과 국제적 신뢰 회복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민감국가’ 지정 사태는 우리 정부의 취약점을 명확히 드러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고, 실질적인 개혁과 대응에 나서는 것이다.
정치권, 정부, 기업, 연구계가 협력하여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실천할 때 대한민국은 이번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탄핵 정국 속에서도 국익을 지키고 국가 시스템을 개선하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은 국제 사회에서 신뢰를 회복하고, 더욱 강한 국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국민이며,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 행동으로 증명해야 할 때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금융소비자연구원장 (경영학박사)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