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병문 칼럼] 미국이 전 세계에서 수입되는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3월 12일부터 25% 관세를 적용했다. 전문가들은 이 조치가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 분석한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관세 인상은 곧장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미국민들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물러설 기미가 없어 보인다. 그는 “나는 항상 옳다. 다른 국가가 부당하게 훔쳐간 미국의 부를 되찾겠다”라며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트럼프가 우방을 대하는 태도는 기존의 관행을 한참 벗어난다. 그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후에 보여준 행보는 파격 그 자체다. 우방국인 캐나다를 향해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라고 조롱한다던지, 러시아로부터 자국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심하게 면박하고, 우호 증진을 위해 찾아온 아일랜드 총리 앞에서 “아일랜드도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라며 쏘아붙이는 것만 봐도 그렇다.
미국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었던 일본도 뒤통수를 맞았다. 지난달 있었던 미·일 정상회담 이후, 일본은 미국의 추가 관세 조치에서 자신들이 제외될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보기 좋게 그 기대를 깨뜨렸다. 그러자 일본 내의 여론도 달라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이 트럼프의 거래 방식에 말려들어 농락당했다”라며 자조적인 반응을 보였다.
문제는 그 같은 현상이 다른 나라들만의 사례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미국의 오랜 우방인 대한민국도 트럼프의 거센 공세를 비켜갈 도리가 없는 게 현실이다. 트럼프 1기 당시 방위비 인상 요구 등의 압박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우리로서는, 한결 매서워진 그의 공세 앞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혼란한 국내 정치 상황까지 겹쳐서 그야말로 속수무책(束手無策)의 형국이 되어버렸다.
‘미국 우선주의’ 부르짖는 트럼프
트럼피즘(Trumpism)이란 트럼프의 극단적 주장에 대중이 열광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극단적인 배타주의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지지자들을 끌어모으고 정치적인 입지를 굳혔다. 실제로 2기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인접 국가인 멕시코의 불법 이민자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접경지역에 장벽을 설치하고, 파리기후협약과 WTO를 탈퇴했으며, 심지어 난민지원 프로그램까지 중단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는 또 가자지구를 소유하겠다고 호언(豪言)하고,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명칭을 변경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파나마운하 운영권을 되찾겠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덴마크령인 그린란드를 미국에 병합하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렇듯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기치 아래 독선적인 정책을 마구 쏟아내는 중이다.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까지야 뭐라고 할 수 없겠지만, 그 방법이 지나치게 거칠고 일방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며 초강대국에 부여된 역할을 기꺼이 수행해왔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은 그럴 의향이 없어 보인다. 트럼프는 전임자인 바이든이 주력했던 ‘가치와 규범’을 중시하는 정책을 뒤집고, 관세를 무기로 보호무역을 강화하며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함으로써 전통 우방국들과의 관계를 훼손하고 있다. 트럼프 1기에 비해서도 더 노골적이고 공격적이다.
또한 트럼프는 중국을 견제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권위주의 국가들에 손을 내밀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과 친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EU와 나토 국가들을 당혹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북한의 김정은에게도 놀랄 만큼 우호적이다. 그는 이미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이라고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이러다 자칫 한반도 문제에서 대한민국을 패싱하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다. 이래저래 여간 신경 쓰이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난국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라
미국의 한국 압박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최근 러트닉 상무장관은 다음 달 예고된 자동차 상호관세 대상국에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고 못박았다. 그동안 원활하게 작동되고 있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재조정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셈이다. 이달 말로 예정됐던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방한도 무산됐다. 그는 일본과 필리핀 등 인도·태평양 역내의 동맹국들을 방문할 예정이다. 당초 한국도 방문지에 포함됐었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취소됐다.
또한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SCL)에 포함했다고 한다. 특정 국가가 SCL에 오르는 이유로 "국가 안보, 핵 비확산, 테러 지원 등"을 명시하고 있는데, 확고한 동맹국인 한국을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 미국이 적대 국가로 규정한 나라들과 같은 범주에 집어넣은 이유가 무엇이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미국의 전방위적 공세는 향후 우리나라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것이 경제 분야에 국한되지 않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국운이 갈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크다. 황망 중에 그나마 긍정적인 소식은 한미 외교 수장의 회동이다. 그들은 독일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MSC)에서 만나 조선·반도체·원자력·LNG 분야에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천만다행이다.
트럼프 1기에 비해 훨씬 독해진 ‘트럼피즘’ 쓰나미 앞에서 세계는 각자도생하느라 바쁘다. 우리도 그 경쟁에서 뒤처질 수 없다. 거대한 외부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대응이 절실하다. 정부는 무엇을 주고 어떤 걸 취할지 치밀하게 계획하고 치열하게 협상하여, 이 난관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정치권도 정쟁을 잠시 접어두고, 목전의 위기 극복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살아남을 수 있다.
필자 소개
나병문(rabmna1958@naver.com)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 연구위원
-SN경영연구원장
-경영학박사, 전 우리은행 지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