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백악관에 입성했다. 그의 복귀는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미국의 외교·경제·사회 전반을 뒤흔들 ‘노선의 회귀’를 의미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1기보다 더욱 노골적이고 강경한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 중심의 경제 질서 재편, 자국 산업 보호, 이민 억제, 군사 동맹 재조정 등의 의제가 다시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이 구호는 미국 중서부 제조업 지역의 백인 노동자 계층 등 일부 유권자에게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그러나 단기적인 정치 성과를 위해 미국의 국제적 신뢰, 경제 활력, 사회 통합을 희생한다면, 이는 ‘아메리카 퍼스트’가 아니라 ‘아메리카 워스트(America Worst)’로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흔들리는 동맹, 균열 가는 미국의 리더십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적인 동맹국들에 ‘공정한 분담’을 반복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NATO에는 더 많은 방위비를 부담하라고 압박하고, 한국과 일본에는 ‘안보 무임승차론’을 꺼내 들었다. 이른바 ‘거래적 외교’는 동맹을 공동의 가치가 아닌, 비용과 편익의 계산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올해 2월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미국 대표단이 “미국은 자동으로 동맹국을 방어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중동은 불안정하고, 대만 해협의 군사적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흔들린다면, 국제 질서는 급속히 재편될 수밖에 없다.
과거 미국은 단순한 군사 강국이 아니라, 민주주의·자유무역·규범 중심 질서를 주도하던 리더였다. 이 리더십이 약화되면 세계는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자발적 후퇴는 곧 그 영향력의 쇠퇴로 이어진다.
경제를 되레 옥죄는 보호무역
트럼프 행정부는 다시 중국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멕시코·베트남 등 제3국에도 무역 재조정으로 압박하고 있다. 명분은 ‘제조업 부활’과 ‘일자리 보호’다. 그러나 21세기 세계 경제는 더 이상 국가의 안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전기차, 반도체, 배터리 같은 전략 산업은 글로벌 공급망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미국 기업들은 원자재를 외국에서 조달하고, 해외 인력과 기술을 활용해 생산한다. 이런 공급망을 인위적으로 차단하면 생산비는 급등하고, 소비자 가격은 오르며, 기업의 국제 경쟁력은 약화된다.
보호무역은 산업을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미래 산업의 숨통을 조일 수 있다. 여기에 상대국의 보복 관세까지 더해지면 미국 수출기업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다. 단기적인 관세 수익보다 장기적인 산업 생태계 훼손이 훨씬 더 클 수 있다.
이민 억제가 부르는 노동력의 위기
트럼프 정부는 불법 이민자 단속뿐 아니라 합법 이민자에 대한 비자 발급도 대폭 줄이고 있다. 특히 비숙련 노동자와 저임금 직종에 대한 비자 발급은 사실상 봉쇄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노동시장의 현실은 다르다. 농업, 건설, 식품이나 서비스업은 이미 심각한 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 미국은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으며, 이민은 경제의 유연성과 활력을 떠받쳐 온 핵심축이었다. 실리콘밸리 창업자 다수가 이민자라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미국의 기술력과 창의성은 다양성과 개방성에서 비롯됐다.
이민의 문을 닫으면 단순한 인력 부족을 넘어 산업과 기술 경쟁력까지 약화된다. 노동력 기반이 무너지면 미국 산업의 미래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분열로 치닫는 미국 사회, 공동체의 붕괴
트럼프의 복귀는 미국 사회 내부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정치적 협력보다는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으며, 주별로 낙태, 총기, 교육 정책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미국의 정치적 일관성은 무너지고 있다.
사법부, 언론, 행정기관에 대한 대통령의 공격은 제도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 일부 연방기관에서는 정치적 충성도에 따른 인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 원칙마저 흔들고 있다.
이제 ‘하나의 미국’이 아닌 ‘두 개의 미국’이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사회적 분열은 공동체의 비용으로 이어지며, 결국 미국 전체의 역량을 약화시킨다. 미국은 세계를 이끄는 강국이기 이전에, 내부적으로 결속력 있는 공동체여야 한다.
‘함께 가는 미국’만이 미래를 보장
결국 ‘아메리카 퍼스트’는 누구를 위한 전략인가. 일부 산업계나 백인 노동자 계층에겐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전체, 나아가 세계의 안정을 고려할 때 이 전략은 지나치게 협소하고 자기중심적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국제 규범과 다자주의를 이끌어온 글로벌 리더였다. 지금처럼 ‘우리만 우선’이라는 태도를 고수한다면, 미국은 세계의 신뢰를 잃고 동맹에서 이탈하며, 경제적으로도 고립될 수 있다.
오늘날 세계는 기후변화, 보건 위기, 공급망 재편 등 초국적 과제를 함께 해결해야 할 시대다. 미국이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자국 우선이 아니라 ‘공동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정말로 미국의 앞날을 걱정한다면, 지금은 ‘함께 가는 미국’을 진지하고 절실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금융소비자연구원장 (경영학박사)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